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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역사] ‘136표를 135표로’…사사오입 개헌으로 이승만 독재 시작

넥스트 철기자 2025. 11. 27. 14:51

이승만 대통령. /자료제공 한국학중앙연구원

 

71년 전 오늘, 19541127일 국회에서 부결된 헌법 개정안이 집권 여당의 사사오입계산법으로 가결 처리됐다. 사사오입 개헌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대통령의 정권연장을 위해 헌법 정족수까지 왜곡한 대표적인 위헌 사례이다.

 

6·25 전쟁 중 이승만의 장기 집권 야욕

 

사사오입 개헌은 한국전쟁 직후 혼란 속에서 이승만 정권의 장기 집권 구상과 맞물려 추진됐다. 당시 헌법에는 대통령 3선을 금지하는 조항이 있었고 이미 재선에 성공한 이승만 대통령은 다시 출마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같은 해 가을 여당과 무소속 일부 의원들은 초대 대통령에 한해 중임 제한을 없애는 내용의 개헌안을 발의했다. 여기에는 국무총리제 폐지와 국무원의 국회 연대책임 삭제 등 대통령 권한을 강화하는 조항도 함께 담겼다.

 

겉으로는 헌정 정비와 국민투표제 도입을 내세웠지만 핵심은 이승만 대통령에게 3선 출마를 열어주는 것이 목적이었다.

 

1명 모자른 정족수자유당 사사오입 논리

 

19541127일 국회 본회의 표결이었다. 헌법은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을 개헌 요건으로 규정했고 당시 재적 의원은 203명이었다. 비밀투표 결과 재석 202명 가운데 찬성 135, 반대 60, 기권 7표가 나와 정족수 136표에 1표가 모자랐다. 사회를 맡은 최순주 국회 부의장은 헌법 규정에 따라 개헌안 부결을 선포했다.

 

그러자 자유당 지도부는 곧바로 사사오입논리를 꺼냈다. 재적 203명의 3분의 2135.333명인데 소수점 이하는 사람으로 볼 수 없으니 정족수는 135명이라는 주장이다. 수학에서나 쓰는 반올림을 헌법 정족수에 적용해 부결된 안건을 사실상 가결로 돌려세운 것이다. 정부 공보처는 다음날 이를 공식 입장으로 발표했고 여당은 개헌안은 통과됐다는 선전을 벌였다.

 

1129일 속개된 본회의장은 사실상 날치기 개헌이었다. 최순주 부의장이 이틀 전 부결 선포를 계산 착오라며 취소하고 가결을 선언하려 하자 야당 의원들이 단상으로 몰려가 거세게 항의했다. 소란 끝에 야당이 집단 퇴장한 뒤 여당 단독으로 부결 번복 동의안과 개헌안 가결 선언이 처리됐다. 이후 치뤄진 선거에서 이승만이 조봉암에 승리하면서 3선 연임이 확정됐다.

 

사사오입 개헌은 절차와 내용 모두에서 중대한 위헌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사사오입이라는 기적의 계산법에 따른 절차적 위반은 물론, 초대 대통령에 한해서만 중임 제한을 철폐하는 내용은 헌법 상 평등의 원칙을 위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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